Pohang 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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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레이디스

이기희

 

 
Part 3
 
 
 

 

 그렇게 애틋한 배려를 마음 속에 묻어둔 채 동빈동 언덕배기를 오르자니 갑자기 허기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잔뜩 주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서 후끈 달아오르는 훈기가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아직 점심을 먹지 못한 터였다. 마음같아선 무엇이든 집어먹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마땅하니 먹을 만한 곳도 없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먹을거리를 찾았건만 모두들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 같았다. 죽도시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올라보니 어두컴컴한 주위가 갑자기 밝아지는 듯한 분위기였다. 꼭 뭔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묘한 기분에 나는 고개를 내밀어 앞을 내다보았다.
 아-
 이게 어찌된 일인가!
 오거리 길목으로 내려오자니 누런 황톳물이 전면에 쫙 펼쳐져 있는, 그야말로 물바다였다. 막걸리를 쏟아부은 듯 누리스름한 도심공간, 곳곳에 쓰레기 더미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냄새마저 퀴퀴하였다. 상가주변 사람들은 여기저기 바삐 오가며 가재도구를 챙기고 있었고, 몇몇은 물에 떠다니는 옷가지들을 건지고 있었다. 저만치 물 속에 잠긴 도로 중앙에 강아지가 바둥대고 있었고, 심지어 돼지 새끼들도 눈에 띄기조차 하였다.

 문턱으로 찰랑찰랑 넘쳐드는 물을 잔뜩 쌓아놓은 신문지 더미 너머로 연신 퍼내는 오디오 가게 앞을 지나자니 누런 물로 잠시 밝았던 주위도 어느새 서서히 어둠에 사그러들고 있었다.
  어떡할까?
  이런 날씨에 굳이 집으로 가야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잠시 망설였다.
  다시 발길을 돌려 두호동 친구 집으로 가서 바둑이나 한 판 두고 저녁이나 얻어먹을까 하는 생각이 채 들기도 전에 그녀가 훌쩍이며 서둘러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전면에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물바다를 보고선 지레 겁이 났던 모양이었다.
 “왜 그러세요?”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떡하면 좋아요? 집엔 전화도 안되고...”
처음으로 서로 주고 받은 말이었다.
 “집이 어딘데예?”
 “인덕인데예.”
 말을 내뱉을 적마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모습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전 집이 오광장 쪽이거든요. 그쪽까진 제가 바래다 드릴 테니 너무 걱정 마이소.”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그만 나의 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너무나 갑작스레 다가선 그녀, 한동안 비를 맞아서인지 손은 너무나 차가웠다.
 그렇게 해서 우린 오거리 흙탕물 쪽으로 향했다. 물속으로 들어가자 휘몰아치던 빗줄기가 더욱 거세어졌다. 서로 두 손을 꼭 잡은 채 오거리 신호등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이르자 물이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조금이라도 물에 적게 젖을 양으로 인도를 따라 걸어갔지만 간간이 움푹 패인 곳에라도 닿을라치면 이내 아래로 쑤욱 내려가는 듯한 느낌에 어찌나 간담이 서늘하던지 그녀의 손을 바짝 움켜쥐었다. 그녀도 나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손아귀에 더욱 힘을 실었다. 그제서야 그녀의 손에서 따쓰한 온기가 전해져 왔다. 한기에 소름이 잔뜩 돋아난 반소매의 팔뚝에서 허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어디에 근무하세요?”
 “시청에요.”
 “이 물난리에 시청에서 그렇게 오래 있었어요?”
 “누가 이럴 줄 알았겠어요?”
 그녀의 말이 맞았다. 관공서는 모두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지금 이 저지대에서 벌어지고 일들을 미리 예견하지 못했으리라. 더군다나 가장 먼저 알려줘야할 방송매체들도 이런 상황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한 울타리에 살면서 못내 여유를 부리는 듯한 그들에게 은근히 화가 치밀기도 했다. 그렇게 오기를 되씹으며 오거리 신호등으로 막 접어들었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몸이 뒤로 쏠리면서 물길이 가슴팎까지 확 차올랐다. 너무나 엉겁결에 당한 일이라 나는 그녀의 손을 꽉 움켜잡았다. 그녀도 화들짝 놀라 나의 소매를 확 끌어당겼다. 겨우 몸을 가누고 옆을 보자니 발밑으로 하수구물이 펑펑 솟아오르고 있었다. 어찌나 놀랬던지 머리끝이 쭈볏했다. 그녀를 돕겠다고 자청하여 나선 일에 뜻밖에 그녀의 도움을 받고나니 내심 그녀가 고마웠다.
 ‘만에 하나...’ 하는 생각으로 머리를 가로저으며 씨-익 웃자니 그녀가 나의 손을 흘끔 잡아끌었다. 이미 호된 신고식을 치른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도로 중앙으로 들어갔다. 인도 쪽보다 물이 더 깊었지만 그곳으로 들어가면 조금 전과 같은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허리춤을 넘어 가슴팎까지 차오르는 물속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진풍경은 실로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길 양 옆으로 쭉 늘어선 가로수 사이로 끝자락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오광장에서부터 누런 황톳물이 질질 흘러들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도시의 온갖 더러움과 추함이 오광장이란 대동맥을 통해 이곳 오거리로 몰려드는 것 같았다. 빛 바랜 종이뭉치, 때가 잔뜩 낀 PET병,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다가오는 황갈색 맥주병, 가장 은밀한 곳까지 가려주는 속옷가지도 이 거대한 물난리 앞에선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다시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수시로 변하는 날씨에 그녀가 맞대응이라도 하듯 우산을 펼쳤다. 그렇게 포항 오거리 저지대 구역을 한참 걷자니 가슴팎까지 차올랐던 수위가 점점 낮아졌다. 물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만큼 오광장쪽으로 올라왔다는 표시였다. 다시 간간이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듬거리며 다시 인도로 올라왔다. 듬성듬성 바닥이 드러나 보이는 곳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어려울 때일수록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 있듯이 행선지가 같은 중년의 신사 한 분과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었다.
 
“내 평생 이런 비는 처름 보는 기라."
".....”
한탄조로 던진 말이 독백처럼 들렸다.
".....”
"우예 비가 와도 이래 많이 오노?”
끝을 강하게 비트는 듯한 소리에 차마 가만 있을 순 없었다.
"그러게요.”
"아저씬 어디 사는데예~?”
포항 특유의 시비조 억양이었다.
"오광장인데예.”
"아~, 그런기요?”

"아가씨도 집이 거긴기요?”
"아뇨, 인덕이라예”
"아이고, 그래가 우야노!”

거친 듯 하면서도 투박한 목소리에 아직도 간간이 긴장감을 느끼는 걸 보니 난 아직도 포항 사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불보다 물이 더 무섭다는데 그래도 우야는 기요."
지긋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우산을 지팡이 삼아 보무당당하게 앞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자니 일순 마음이 가벼워졌다. 온 도시를 뒤덮고 있던 물길도 이제 정강이 아래에까지밖에 차오르지 않았다.
 “전 집이 저기거든요!”
 여태껏 동행하던 노신사가 손으로 자신의 집을 가리키며 눈길을 던졌다. 간간이 허실없이 툭툭 던지는 말에 잠시 두려움도 잊은 터라 아쉬움이 더했다. 더군다나 그의 연륜에 따른 자상한 배려는 긴장의 끈을 풀어헤치기에 충분했으리라.
 “아가씨! 거기까지 가기가 힘들 낀데,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랑기요?”
 채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 마음 어딘가에 날카로운 비수같은 것이 날아들었다.
 “자고 가?”
 언뜻 듣기엔 황당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그것도 어엿한 숙녀가 외간 남자의 집에서 자고가다니...
 순간 나는 속에서 뭔가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왈칵 치밀어올랐다. 하지만 그러한 격정도 눈앞에 펼쳐진 누런 황톳물의 망망대해엔 견줄 바가 못되었다.
 “그래요. 자고 가세요.”
 마음같아선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팠건만 나도 모르게 불쑥 그런 말이 튀어 나오고 말았다. 참으로 참담한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금방 내뱉은 말을 되물릴 순 없는 일, 세상일이란 다 그렇게 해서 꼬여드는가 싶었다.
 ‘그곳에 갈 바엔 차라리 우리 집에나 가지’
 난 속으로 그렇게 되뇌고 있었다.
 ‘.....?’
 흘깃 나를 쳐다본 그녀의 표정에서 고민하는 빛이 역력하였다.
 나는 허릴없이 플라타너스 나무밑둥만 툭툭 차고 있었다. 무어라 대답하기가 자못 망설여지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녀의 입장에서 본다면 얼마나 암담한 처지랴? 지금껏 걸어왔던 것보다 더 멀리 걸어가야 할 형편이고 보면 차라리 눈 딱 감고 하룻밤 자고 가는 것도 그리 나무랄 일만은 아닐 터이고..., 더군다나 저렇게 나이가 지긋한 양반인데 뭔 일이야 있을까? ‘내가 이 자리에 없다면...’ 나는 아무 말 없이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푹 수그린 얼굴 미간사이로 굵직한 빗방울들이 세차게 몰아쳤다. 오늘 밤 그의 집에서 벌어질 일들을 그려보자니 왜 그리도 마음이 어수선하던지... 그렇게 황망한 마음을 뒤로 한 채 빗속을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는데,
 “아저씨!”
 저만치 뒤에서 그녀가 첨벙첨벙 물을 튀기며 달려오고 있었다.
 “갈려면 인사나 하고 가야죠.”
 “아-, 예~.”
 어찌나 반갑던지 가던 발걸음을 되돌려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자고 가지 그랬어요?”
 그녀를 보기가 무안한 듯 괜스레 머리를 긁적이며 사뭇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럴 수야 있나요?”
 새침때기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가 더없이 예뻐보였다.
 ‘이 물난리에 꼭 집에 가야돼요?’
 이젠 나의 연막작전이었다.
 “그럼요?”
하지만 그녀의 짤막한 대답은 이미 차디찬 현실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설렁한 분위기가 지속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저만치 앞에 짙은 황토색 지붕이 눈에 띄웠다.
 “저기가 제 집이거든요...”
 실낱같은 기대감은 차마 저버릴 수 없었다.

 “그간 고마웠어요.”
 이제 혼자라는 생각에 두려움마저 일었던지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손을 가볍게 흔들며 안녕을 고하는 그녀의 처연한 모습이 어렴풋이 비춰들었다. 나는 못내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옆으로 비켜서서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보았다. 정강이까지 차오르는 물을 헤집으며 저벅저벅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끝내 고집을 부리면서까지 그녀의 집에 집착하는 그녀가 더없이 측은해 보이기조차 하였다. 한 이불을 덮어도 어떤 보이지 않는 선을 넘지 않으리란 강한 확신마저 생겼건만 그녀는 선뜻 그런 제의에 응할 태세가 아니었다. 허긴 이런 속내를 누가 일일이 다 알랴? 조금 전 그 노신사의 완곡한 제의도 그렇게 거절하고 왔는데 한창 혈기왕성한 나를 순순히 따라나설린 만무하질 않은가? 내가 아무리 순수한 의도를 가졌다손치더라도 그녀는 끝내 집으로 갈 태세였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저토록 집으로 향하게 하는 걸까? 자고로 남자들이란 전부 다 늑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녀가 저토록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자신의 집을 고집한단 말인가? 그리고 또, 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녀에 대해 이토록 관심을 가진단 말인가, 적어도 그녀가 부담스러워하는 그 동물성을 배제하고서라도...?

 

 

 

 

 

Par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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