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 당시 난 시청 옆 조그만 학원에 근무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내린 비로 오전 내내
찌부둥한 기분이었고, 오후에 들어서도 비가 내리긴 마찬가지였다. 오후수업을 위해 교무실에 앉아 있는데,
얼마나 비가 많이 내리던지 내내 근심 어린 표정으로 창 밖만 내다보았다. 빗줄기는 더욱 더 거세지고,
조그만 틈새로 빗물이 좔좔 새어들었다. 아무래도 수업이 힘들 것 같아 아이들을 일찍 집으로 돌려보낸
뒤 교무실에 앉아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자니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간간이 음악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차게 몰아치는 빗줄기로 사방이 어둑해지자 옆에 있던 어느 여 선생님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집은 30km나 족히 떨어진 경주였기에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동안 어수선한 분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밖에선 뿌연 안개 속으로 장대같은 빗줄기가 더욱 강하게 몰아치고, 간간이 창을 후려치는 듯한
비바람이 얼마나 거세던지 자못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곳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별다른 이상이 없기를
바라는 표정으로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간단하게 문단속을 하고 난 뒤 나도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고지대라 그런지 그렇게 많은 비를 뿌렸지만 별다른 피해를 감지할 수 없었다. 나는 버스정류장
한 켠에 자리를 잡고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저만치 옆에서도 몇몇 사람들이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그들 모습으로 봐선 한참 기다린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여느
때 같았으면 벌써 오고도 남았을 시간이었건만 버스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더러는 기다리다 지친 듯
택시를 타고 가기도 하였다. 나는 어떻게 할까 한동안 망설이다 이왕 기다린 것 끝까지 기다려 보자 싶어
마냥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애타게
버스를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이제 남은 사람은 저와 통통한 얼굴의 아가씨 한 명
뿐이었다. 사정이 비슷한 처지인지라 둘은 가끔씩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그러다 우연히
시선이라도 마주 칠라치면 서둘러 고개를 옆으로 돌리곤 하였다.
그렇게
한참 고개를 내밀어 기웃거리던 그녀가 불안한 기색을 하며 발길을 돌렸다. 버스 정류장 옆 공중전화기
부스 안으로 들어간 그녀가 몇 번 신호를 보내는가 싶더니 불안한 기색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실 난
그렇게 돌아온 그녀를 보고 내심 기분이 좋았다. |